트럼프는 집권 2기에 들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에 편입하겠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안보에 필수적이다'라는 것을 그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 이유는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린란드는 나토에 속하며 이미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러시아, 중국 핑계를 대고 더 주둔한다고 해도 덴마크는 말릴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기꺼이 허용해 줄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기어이 그린란드를 미국 땅으로 만들려고 한다. 유럽의 반발과 유럽에서의 미국 영향력 감소를 무릅쓰고도 왜?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은 '구조 조정'을 준비하고 있고, 그린란드는 그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것이다. 그 중심에는 미국의 '국가 부채'가 있다.

미국은 '구조 조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 모순적인 상황을 이해하려면 우선 미국의 현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매년 불어나 2025년에는 미국 GDP(연간총생산)의 120%에 육박하고 있다. 이 국가 부채에 대해서 미국은 채무자로서 채권자에게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국가 부채에 대해 내는 이자 금액만으로 미국 정부 지출의 가장 높은 비중인 19%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매년 국방비로 지출하는 9100억 달러를 넘어선 9700억 달러를 매년 국채에 대한 이자로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은 누가 봐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뭐? 미국이잖아. 달러를 더 찍어내서 이자를 메꾸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미국 정부는 직접 달러를 찍어낼 권한이 없다. 달러는 오직 연준(Fed)에서만 찍어낼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찍어낸 달러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 뿐이다. 연준에게서 찍어낸 돈을 빌리는 것이다.

그럼 '달러를 찍어내서 이자를 메꾸면 된다'라는 말이 왜 어불성설인지 이해할 수 있다. 달러를 찍어낸 만큼 미국 정부가 지는 빚이 늘어난다. 즉 올해 1조 달러를 찍어내서 이자를 메꾸면, 내년 갚아야 할 빚이 1조 달러만큼 늘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비례해서 내야 할 이자도 증가한다. 그동안 미국 서민들은 더 많이 풀린 돈으로 가속화된 인플레이션의 늪에 더욱더 깊숙히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국가 부채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늘어날 것을 경제학자들은 모르고 있었을까?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빚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미국의 경제 성장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국가 부채가 늘어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이 기존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이 공식은 깨졌다. 2025년 한 해 동안 미국의 GDP는 (명목상) 4.5% 상승한 반면, 국가 부채는 무려 6.2%나 상승한 것이다. 이대로 가면 미국은 머지않아 하이퍼인플레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GDP 대 국가부채

사람들은 이런 빚의 늪에 빠졌을 때,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 먼저 넷플릭스 구독을 끊는다든지, 외식을 줄인다든지 필수적이지 않은 지출을 줄임으로써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한다. 기업들은 가장 핵심적인 사업만을 남기고 수익성이 없는 나머지 곁가지들은 축소하거나 팔아버리는 '구조 조정'을 해서 부도를 면하려고 한다. 미국 정부라고 해서 다를까?

'구조 조정'과 먼로 독트린, 그리고 그린란드

미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 하루빨리 세입을 늘리거나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미국 정치인에게 '증세'는 선택지에 존재하지 않고, 입에 올릴 수조차 없는 단어다. 그럼 다음 옵션은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미국의 정부 지출 중 이자 지불 다음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국방비'이다. 미국이 대거 군축을 한다면 국채 부담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전 세계에 헤게모니적 영향력을 떨쳐 왔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강한 군사력은 그 든든한 뒷받침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중국이 급부상하고 미국의 재정 상황이 악화하면서 이 헤게모니는 위기에 빠지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러시아는 그 틈을 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예전의 미국 같으면 단숨에 서방의 승리로 끝내버렸을 전쟁이 4년 가까이 질질 끌리며 러시아에 얼마의 영토를 주니 마니 하는 논의가 오가는 것을 보면 단박에 짐작이 올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을 넘보는 세력들이 세계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전세계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버티다가 폭싹 망하는 대신, '선택과 집중', 즉 그 영향력의 범위를 자신의 앞마당인 아메리카 대륙1으로 축소하고 그 앞마당 안에서만큼은 확실하게 집중하자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 결론이 바로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 문서로 선언한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으로의 복귀'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의 극우 인사들은 미국보다 사회 이슈에서 진보적이고 경제 체제에서 사회주의적인 유럽을 극도로 증오한다. 그들은 그런 유럽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주둔하며 미국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들이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유럽과 미국의 군사적 디커플링, 즉 나토 해체 또는 탈퇴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유럽과 잘 지내다가 어느 날 뜬금없이 나토 탈퇴를 선언하고 미군을 모두 철수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 국내외에서 '미국이 돈이 없어서 군대를 철수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고, 미국의 국력 약화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꼴이 될 것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위대한 나라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하고 또 미국에 감히 도전할 수 있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는 트럼프가 그렇게 할 리가 없다. 그럴 수 없다면, '미국의 체면이 구겨지지 않는 방법으로의 나토 철수'를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린란드는 지리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속해 있다. '서반구'에 속하는 미국의 '앞마당'인 것이다. 그런데 미군이 현재 그린란드에 주둔하고 있는 공식적인 명분은 그린란드가 나토에 속한 덴마크의 일부이기 때문, 즉 '덴마크를 지켜주기 위해'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하게 되면, 미군이 더 이상 그린란드에 주둔할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에서 군대를 빼고 싶은 것이지, '서반구'에 속하는 그린란드에서까지 빼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럼 나토에서 탈퇴하기에 앞서, 그린란드를 먼저 미국 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린란드 병합으로 인해 유럽에서 반미 정서가 확산되면, 그것을 핑계 삼아 나토에서 탈퇴할 명분 또한 자연스럽게 생길 수 있다. 그 반작용으로 '저런 배은망덕한 유럽 놈들을 우리 혈세를 써서 지켜 줄 필요가 있느냐? 당장 군사를 빼서 본때를 보여주자!'라는 정서가 미국 보수 지지층 내에서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척 하며 자연스럽게 나토 철수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체면이 구겨지지 않는 방법으로의 나토 철수'를 위해 트럼프는 이미 '애국적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자' 대 '사악한 글로벌주의자(globalist)'로 그 밑밥 프레임을 깔아 놓았고, 앞으로 이 프레이밍은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린란드 병합은 '미국의 나토 탈퇴를 위한 밑밥'이라고 볼 수 있다.

다극주의적(Multipolar) 세계로의 전환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영향력을 축소하면, 남은 세계는 어떻게 될까?

캐나다 카니(Carnie) 총리는 2026년 1월 21일 다보스 포럼에서 캐나다의 새로운 시대를 정의할 명연설을 했다 (전체 내용을 들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카니는 '나날이 규칙은 무의미해져 가고, (미국과 같은) 강대국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동안 우리 같은 중견국(Middle Powers)은 고통받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 같은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에 대해 카니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그것을 믿는 이가 있는 동안만 존재하는 허구(fiction)입니다. 우리 중진국들은 더 이상 그 허구 속에서 사는 것을 그만둬야 합니다.'

우리는 기존의 질서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애석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에 대한 향수(Nostalgia)는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분열의 틈에서 더 위대하고, 더 훌륭하며, 더 강력하고 정의로운 무언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강대국에게는 그들만의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가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식을 멈추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내부의 역량을 기르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캐나다가 걷고자 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당당하고 자신 있게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은 우리와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모든 나라들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같은 포럼에서 프랑스와 덴마크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 또한 미국의 횡포에 굳건히 맞서 싸울 것을 천명했다.

어리석게도, 트럼프는 미국과 자신의 알량한 체면을 살리기 위해 전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선택을 해 버린 것이 아닐까?


각주

  1. 미국의 NSS 문서는 "서반구(Western Hemispher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