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 당시의 중세 한국어에서 음절말(종성) <ㅅ>이 [s]와 같이 마찰음으로 발음되었다는 사실은 과거에는 여러 학자들의 많은 의심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대체로 인정되는 바이다.1 이 글에서는 '음절말 <ㅅ>이 언제부터 현재와 같은 /ㄷ/으로 발음되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고광모(2023)에 따르면 그 시기는 15세기 말부터이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15세기 말에 나타나는 'ᄭᅳᅀᅳ-' (<그ᅀᅳ-), 'ᄯᅵᇂ-' (<딯-), 'ᄲᅵᇂ-' (<빟-) 표기를 보면, 이 시기의 'ㅺ, ㅼ, ㅽ'는 s계 자음군이 아니라 된소리의 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동시기에 '~ᄭᅴ / ~ㅅ긔', '거리ᄭᅵ- / 거릿기-' 등의 표기가 혼재되어 나타나는데, 같은 발음을 달리 표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의 'ㅺ'는 된소리 표기였으므로 'ㅅㄱ' 또한 된소리 표기였을 것이다.
  3. 즉 15세기 말에 이미 'ㅅ' 말음은 [s]로 발음되지 않고 [t̚] 또는 후행 자음의 된소리를 나타내는 역할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논리에는 한 가지 허점을 찾을 수 있다. 중세 한국어의 맥락에서 "된소리"라는 음소가 실현된 방식이 현대 한국어의 그것과 같을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가정해 버린 것이다. '된소리'(혹은 '경음硬音', '농음濃音', fortis, tense, hard 등)라는 개념은 현대 한국어의 음운 체계를 논의할 때만 쓰이는 것은 아니고, 세계의 여러 언어들에 관한 논의에서 유사한 개념들이 사용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들에서 '된소리'가 실현되는 양상은 조금씩 다 다르다. 심지어 현대 한국어 내에서도 환경에 따라 된소리가 실현되는 양상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현대 한국어를 중세 한국어와 같은 언어로 취급할 수 없으니만큼, 중세 한국어의 맥락에서 '된소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 중세한국어의 '된소리'의 음성적 실현이 어떠하였는지를 먼저 논증해야 한다. 고광모(2023)에서 이러한 논증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논문에서 "된소리는 무성무기음이다"라고 선언한 맥락상, 그는 중세 한국어에서의 '된소리(파열음)'는 현대 한국어와 같이 '마찰음이 섞이지 않은, 순수 무성무기 파열음으로만 실현되는 음소'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즉, 고광모(2023)에서 직접적인 서술은 없지만, 어두 <ㅺ, ㅼ, ㅽ>의 실현이 16세기부터 오직 [k˭, t˭, p˭]로만 났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이 사실은 한글 자료와 내적 재구만으로는 확실히 아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두 /ㅺ/의 음성적 실현에서 [s]가 더 이상 발음이 되지 않게 되었다고 하자. 어두 /ㅺ/의 발음은 변했지만 여전히 평음과 구분되는 된소리로서 어두 /ㄱ/과의 대립은 대체로 그대로 유지되었다. 15세기 한국어에서 /ㄲ/는 어두에 올 수 없었기에2, 기존에 존재하던 음소적 대립이 사라진 것도 없고, 기존에 없던 음소적 대립이 생긴 것도 없다. 단지 /ㅺ/이 음성 층위에서 실현될 수 있는 변이음만이 변한 것이지, 음소 층위에서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이다. 만약 기존의 음소적 대립이 사라졌다면, 대립이 사라진 두 음소의 표기가 상호 혼동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그 변화가 일어난 시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ㅺ/이 '된소리'로 된 변화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표기로써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외적으로 15세기에 이미 '표현적 경음화'를 경험한 'ᄭᅳᅀᅳ-', 'ᄯᅵᇂ-', 'ᄲᅵᇂ-'와 같은 표기가 <ㅺ, ㅼ, ㅽ>로 표기되는 것에서 어두 /ㅺ, ㅼ, ㅽ/의 실현 양상을 부분적으로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어두 /ㅺ, ㅼ, ㅽ/가 그 표기가 나타난 시기에 [sk, st, sp]로 실현되지 않았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하나의 음소에 여러 가지의 변이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또는 또박또박 말할 때는 /ㅺ, ㅼ, ㅽ/가 [sk, st, sp]로 발음되고, 일반적인 속도로 말할 때는 [k˭, t˭, p˭]로 발음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을까?

전사 자료의 반영 양상

그렇다면 16세기 이후 /ㅺ/, /ㅼ/, /ㅽ/의 음성적 실현 양상은 어떤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을까? 바로 외국인의 한국어 전사(轉寫) 자료이다. 이 자료들은 외국인이 당시 한국어의 음성을 듣고 자국의 문자(가나와 로마자)로 기록한 전사 자료이다. 외국인의 한국어 전사 자료는 당시 한국어 화자들의 한글 표기로만은 알 수 없는 '변이음'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그런데 외국인의 한국어 전사 자료에서 'ㅅ'이 나타내는 양상은 고광모(2023)의 서술과 직접 충돌한다.

Witsen

^ Witsen(1705), Noord en Oost Tartarye. 이 자료는 『하멜 표류기』로 알려진 헨드릭 하멜과 함께 1653년에 조선에 조난되었던 네덜란드인 Mattheus Eibokken이 전사한 한국어 단어 목록이다. Frits Vos(2002)에 따르면 Eibokken은 1663년 2월부터 순천에서 체류하다가 1666년에 일본으로 도망하여 2년 후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네덜란드의 학자 Nicolaes Witsen에 의해 Eibokken의 단어 목록이 출판되었다. 한국어 단어를 적고 그 뜻을 네덜란드어로 표시하였는데, 그 중에 Spaem (ᄲᅡᆷ), Stock (ᄯᅥᆨ) 등이 눈에 들어온다. Tasset (다ᄉᆞᆺ), Joset, jaset (여ᄉᆞᆺ) 등의 'ㅅ' 말음은 <t>로 반영되었다.

일본 측 자료는 더 다양하다. 16세기 조선에 방문했던 승려가 남긴 <尊海度海日記>(1539)에는 한자로 된 조선 지명 옆에 가타카나로 발음을 적어 두었는데, 아래 표기가 눈에 띈다.

  • 豆毛浦 - ツムカイ tumusukai (두개)34

또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초에는 <陰德記>에 실린 <高麗詞之事>와 같이 임란에 참여했던 일본인들에게서 조사한 한국어 어휘와 표현을 담은 책이 편찬되기도 하였다. 그 중에 아래 표기들이 눈에 띈다 (한두 개가 아닌지라 여기서는 대표적인 4개만 보이기로 한다).

  • (13) 女子: スタリ sutari (ᄯᆞᆯ)
  • (182) 草: スコル sukoru (ᄭᅩᆯ)
  • (250) 屎: ストン sutoN (ᄯᅩᆼ)
  • (160) 衣脫ケ: ヲスハシケラ osu pasikera (옷 밧겨라)

기존의 논의들에서는 이 자료들에 나타나는 ㅅ계 자음군과 ㅅ말음의 표기 양상에 대해 '한글 표기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하였으나, 나는 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그 주장을 받아들여 Eibokken이 'ㅺ', 'ㅼ' 등의 된소리는 실제로 [s]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한글 철자법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음성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s]를 로마자 <s>로써 표기했다고 하자. 그런데 Deuije "4", Doen "눈", Ana "1"과 같이 'ㄴ'의 표기 양상을 보면 어두에서는 <d>로 나타나고, 어중과 어말에서는 <n>으로 나타난다. 한국어의 어두 탈비음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된소리의 경우는 없는 음성을 만들어서 표기할 정도로 철자법을 충실히 따랐는데, 'ㄴ'의 경우에는 왜 한글 철자법을 충실히 반영하지 않은 것인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ㅅ계 자음군의 '된소리'설을 지지했던 이기문 선생님도 외국인의 전사 자료의 반영 양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기문 1988 인용).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자료가 ㅅ계 병서의 'ㅅ'을 su로 기록한 사실은 홑으로 보아넘길 수 없는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표기가 한글 표기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지만, 우선은 이런 영향이 없었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이론과 전사 자료 사이의 이 모순을 방언 차이로 설명하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중앙어에서는 이미 15세기말~16세기부터 된소리의 [sC] 실현이 사라졌지만, 일부 방언에는 17세기까지 남아 있었는데, 위 전사 자료들은 그 방언의 반영이라는 주장이다. Eibokken은 순천 지역에 일정 기간 체류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전남 순천 방언, <高麗詞之事>는 임란이 가장 치열했던 경상 지역 방언의 반영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17세기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지역(전남과 경상)에서 [sC]의 발음이 남아있었다는 말이 된다. 당시 중앙어는 150여년의 기간 동안 [sC]들에 둘러싸여 혼자서 [s]가 없는 된소리 발음을 하는 '언어의 섬'이었을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 가능성은 낮게 보고 싶다.

또한, 'ᄭᅳᅀᅳ-'와 같은 '표현적 경음화'를 ㅅ계 자음군으로 반영한 표기는 아래와 같이 16세기 중반 <순천김씨묘 출토언간>에도 나타난다.

  • 계오 ᄭᅳ여 ᄃᆞᆫ니니 민망〃ᄒᆞ여 ᄒᆞ노라 [순천김씨묘출토언간]

위의 용례는 'ᄭᅳᇫ이-'에서 'ㅿ'가 탈락한 16세기 활용형임을 의심할 수 없는데, 만약 Eibokken의 단어 목록이 반영한 순천 방언에서 어두 /ㅺ/이 [sk]으로만 실현되었다면, 같은 16세기 중반 순천에서 어떻게 '표현적 경음화'를 경험한 어형이 <ㅺ>로써 표기되는 게 가능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두 가지 변이음을 가진 어두의 /ㅺ, ㅼ, ㅽ/

16-17세기에 /ㅺ, ㅼ, ㅽ/가 각자 오직 하나의 음성적 실현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가정을 버리지 않는다면, 앞서 거론했던 모순들은 해결할 수가 없다. 16세기에 'ᄭᅳᅀᅳ-', 'ᄯᅵᇂ-', 'ᄲᅵᇂ-' 등이 나타난다고 해서 16세기에 /ㅺ, ㅼ, ㅽ/가 항상 마찰음 없이 실현되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ᄭᅳᅀᅳ-', 'ᄯᅵᇂ-', 'ᄲᅵᇂ-'가 [s]가 없는 '표현적 경음화' 어형의 표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인정하나, 그것은 16세기에 /ㅺ, ㅼ, ㅽ/가 수의적으로 [s]가 없이 실현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뿐이다.

<고려사지사>와 17세기 네덜란드 전사 자료에서 보이듯이 ㅅ계 자음군은 17세기 중후반까지도 [sC]로 발음된 경우가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16세기에는 어두의 ㅺ, ㅼ, ㅽ 등 ㅅ계 자음군과 어두의 ㅳ, ㅴ, ㅵ 등 ㅂ/ㅄ계 자음군, 그리고 15세기 중반까지 표기에 반영되지 않던 '수의적 경음화'를 경험한 ㄱ, ㄷ, ㅂ가 어두 위치에 새롭게 등장한 /ㄲ, ㄸ, ㅃ/라는5 된소리 음소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 있었다. 그런데 이 /ㄲ, ㄸ, ㅃ/는 17세기 중후반까지 여전히 수의적으로 [sk, st, sp]라는 변이음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 즉 어두에서 [k˭, t˭, p˭]와 [sk, st, sp]는 자유 변이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방콕에서 쓰이는 현대 태국어에서는 어두의 /kr-/음소가 /k-/와 대체로 통합되었지만, 사용역(register)에 따라 기존에 /kr-/였던 단어들이 [kr-]로 발음되기도 하고, 어원적으로 /kr/가 아닌 /k-/였던 단어에서도 [kr-]로 과도교정되어 발음되는 현상도 관측된다. 16-17세기 한국어의 어두 /ㄲ, ㄸ, ㅃ/ 는 현대 방콕 태국어와 유사한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음절말 'ㅅ > ㄷ' 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고광모(2023)에서는 자신의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해 15세기에 '갓가'와 같이 어중에 'ㅅ'말음을 가졌던 어형이 자신의 예상대로 16세기 이후에 '갇가'와 같이 표기되는지를 조사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표기는 17세기에야 나오지, 16세기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6 고광모(2023)는 이 사실을 표기의 보수성으로 설명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는 거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갇가'와 같은 어형이 표기의 보수성 때문에 16세기에 등장하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변화들은 어떻게 해서 표기의 보수성을 무시하고 이르면 이르면 15세기 말부터 흔하게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

  • (a) ㅅㅁ > ㄴㅁ
    • 구디 지에 ᄒᆞ던 노내 ᄡᅵ 단 말(<닷 말) [신창맹씨묘출토언간] (1490년대)
  • (b) ㅅㄴ > ㄴㄴ
    • 우리 논 인ᄂᆞᆫ 겨ᄐᆡ셔 경셩 군과니 ᄂᆡ월 열흘ᄭᅴ 드러오ᄂᆞ니 [신창맹씨묘출토언간] (1490년대)
    • 이 약을 머기면 ᄲᆞᆯ리 효험 인ᄂᆞ니라 [창진방촬요:42a-42b] (1517)
    • ᄉᆞ나ᄒᆡ가 간나ᄒᆡ가 [번역박통사상:55b] (1517)
    • 婦人은 사ᄅᆞᄆᆡ게 존ᄂᆞᆫ 거시니 [번역소학03:20a] (1518)
    • 어버ᅀᅵ 다 인ᄂᆞᆫ 사ᄅᆞᄆᆞᆫ 그리 호미 므던ᄒᆞ니라 [번역소학07:23b] (1518)
    • 모미 소사날 길히 인ᄂᆞᆫ ᄃᆞᆯ 알에 ᄒᆞ시니라 [법집별행록:4b] (1522)
    • 봄 ᄠᅳᆯ헤 어즈러이 춤츄ᄂᆞᆫ 거슨 곳 ᄎᆞᆫᄂᆞᆫ 나ᄇᆡ오 [백련초해:90] (1576)
  • (c) ㅅㄴ > ㄷㄴ
    • 올히 ᄀᆞᆺ 열여스신 숟갇나ᄒᆡ라 [번역박통사상:45a] (1517)
    • 스스로 그 사오나옴을 다ᄉᆞ리면 나지며 밤의 아직 스스로 낟낟치 ᄎᆞᆯ화 [소학언해5:94b] (1588)
      (cf. 15세기 중반 '나ᇫ나치, 낫나치' < '낯[箇]-낯-이')
  • (d) ㅎㄴ > ㅅㄴ
    • 즐겨 ᄀᆞᆮᄂᆞ녀 즐겨 ᄀᆞᄅᆞ치디 아닛ᄂᆞ녀(<아니ᄒᆞᄂᆞ녀) [번역노걸대상:6b] (1517)
    • 샤ᇰ녜 아로매 걸일가 젓ᄂᆞᆫ(<젛[恐]-ᄂᆞᆫ) 젼ᄎᆞ로 말ᄉᆞᄆᆞᆯ 조차 업게 ᄒᆞ시니 [법집별행록:23a] (1522)

(a) 'ㅅㅁ > ㄴㅁ', (b) 'ㅅㄴ > ㄴㄴ'은 /ㄴ/ 앞에서 /ㅅ/이 /ㄴ/으로 동화된 것이 표기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중세한국어 당시 /ㄷㄴ/의 연쇄는 동화되어 [ㄴㄴ]으로 발음되었는데 (cf. 걷[步]-나[出]- > 건나-[濟]), (c)의 'ㅅㄴ > ㄷㄴ'은 /ㅅㄴ/과 /ㄷㄴ/ 둘 다 [ㄴㄴ]으로 실현이 같아 나타난 일종의 과도교정 표기라고 볼 수 있다. /ㅎㄴ/의 연쇄 또한 중세한국어에서 [ㄴㄴ]으로 발음되었는데, (d)에서 /ㅎㄴ/ 또한 종종 'ㅅㄴ'으로 표기되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표기들을 바탕으로, 빠르면 1490년대, 늦어도 1510년대에는 비음 앞 'ㅅ>ㄴ'의 변화가 일반적으로 일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17세기에야 일반적인 음절말 환경에서 'ㅅ > ㄷ' 반영형이 나오는 건 16세기까지는 일관적으로 의고적 표기가 사용된 탓이라고 한다면, 비음 앞의 환경에서는 왜 빠르면 15세기말부터 예외적으로 의고적 표기가 적용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기존의 논의에서는 이러한 'ㅅ > ㄴ' 동화 현상은 이미 일반적인 음절말 환경에서 'ㅅ > ㄷ'의 변화가 일어난 후 비음 앞 'ㄷ > ㄴ' 비음성 동화를 겪어서 일어난 것으로 분석하였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16세기 말의 언어를 반영하는 <고려사지사>의 'osu pasikera (옷 밧겨라)'와 같이 'ㅅ'종성이 <s>로 전사된 양상과 '갓가 > 갇가', '옷 > 옫'같은 표기가 17세기에야 나타나기 시작하는 현상, 그리고 몽골어로 추정되는 음식 이름 /tutumas/ (脫脫麻食)가 16세기 자료에 '투투맛, 투투멋'으로 전사된 사실 등을 보면, 16세기까지는 일반적인 환경에서 'ㅅ'종성이 [ㄷ]으로 발음되는 현상이 흔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 데다가, 오히려 그 역을 입증해주는 증거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비음 앞에서의 'ㅅ > ㄴ' 동화 현상은 일반적인 음절말 환경에서 일어난 'ㅅ > ㄷ'의 변화보다 한 세기 반 정도 먼저 일어난 별개의 변화로 보려고 한다. 여기서 일반적인 음절말 환경에서의 'ㅅ > ㄷ'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ㅅ > ㄴ'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관과는 다르게 이러한 변화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영어에도 유사한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남부와 흑인을 중심으로 사용되는 영어 방언에는 'business'가 'bidness' /bɪdnɪs/ 또는 'binness' /bɪnnɪs/로 발음되고, 'isn't' /ɪznt/, 'wasn't' /wʌznt/가 'idn't' /ɪdnt/, 'wadn't' /wʌdnt/로 발음되는 현상이 존재한다 (Wolfram 2004). 그러나 이 영어 방언에는 일반적인 음절말에서의 /z > d/ 같은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비음 /n/ 앞에서만 /z > d/ 현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변화는 Wolfram(2004)에서도 언급하다시피 '지속성(continuant) 동화'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z/ = [+continuant, -nasal]
/d/ = [-continuant, -nasal]
/n/ = [-continuant, +nasal]

즉, /n/의 [-continuant] 자질이 /z/로 퍼지면서 /d/로 동화되는 것이다.

중세국어의 변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용비어천가의 '後ㅿ날', 법화경언해의 '나ᇫ나치' 등 표기와 월인석보의 '걷[步]-나[出]- > 건나-[濟]'등 표기에서 알 수 있듯이, 15세기 중반에 이미 /ㅅ/이 비음 앞에서 [ㅿ]으로 유성음화하는 변화와 /ㄷㄴ/ > [ㄴㄴ]의 비음성 동화가 정립되어 있었다. 따라서 /잇ᄂᆞᆫ/은 15세기 중반에 이미 [iznʌn] 정도로 발음되었을 것이고, 여기서 15세기 말에 영어와 같은 [z > d] 변화를 거쳐 [idnʌn]이 되었다가 즉시 이미 정립된 비음성 동화를 거쳐 [innʌn]으로 실현되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음절말 환경에서의 'ㅅ>ㄷ'의 변화는 필요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17세기 초에 일반적인 음절말 환경에서의 'ㅅ > ㄷ'의 변화는 도대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여기서 앞서 제시한 (c) 'ㅅㄴ > ㄷㄴ'의 표기가 떠오르게 된다. 16세기에 /ㅅㄴ/ > [ㄴㄴ] 과 /ㄷㄴ/ > [ㄴㄴ]의 실현이 동일했기 때문에 /ㅅㄴ/이 'ㄷㄴ'으로도 표기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인데, 그러한 표기가 가능했다면 /ㅅㄴ/의 기저형을 /ㄷㄴ/으로 재분석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소학언해(1588)에 나타나는 '낟낟치'라는 표기가 주목된다. 현대 표준어 '낱낱이'로 이어지는 이 어휘는 15세기 중세한국어에서는 '낫나치', '나ᇫ나치'로 나타나던 어휘이다. 그 어원은 분명히 명사 '낯[個]'이 중첩된 후 부사 파생 접미사 '-이'가 붙은 것(낯-낯-이)일 것이다. 먼저 'ㅊ' 받침이 자음 앞에서 'ㅅ'으로 중화되어 '낫나치'로 나타나고, 거기서 ㄴ 앞의 'ㅅ > ㅿ' 유성음화를 거쳐 '나ᇫ나치'로 된 후, 앞서 설명한 'ㅿ > ㄴ' 과정을 거쳐 '난나치'로 되었을 것이다.7 '난나치'는 원래 첩어疊語였는데, 앞의 말 '난'과 뒤의 말 '나치'의 말음이 크게 달라져 버렸다. 여기서 <소학언해>(1588)의 저자는 '난나치'의 구성을 '낟-낟-치'로 재분석하게 된다. 즉 어원과는 다른 '낟'이라는 어형이 중첩된 것으로 재분석된 것이다.8 '낟낟치'의 발음이 '난나치'와 음성적으로 동일했기 때문에 이러한 재분석은 쉽게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낯[個]'의 현대 어형을 보면 '낯'이 아니라 '낱'이다. 결국 '낫나치 > 낟낟치'를 통해 그 어원이 되는 '낯'이라는 단어 자체가 '낱'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재분석에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발생했던 ㄷ/ㅌ 구개음화도 일조했을 것이다.

범언어적으로 어말 환경의 /s > t/와 같은 변화는 흔하지 않다. 어말 환경에서는 s > h와 같은 약화가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고, s > t와 같이 강화되는 경우는 흔히 찾아보기 어렵다. 고광모(2023)에서는 이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중세 한국어 어말 /ㅅ/이 [st̚]와 같이 발음되었으리라는 추측을 하였는데, 딱히 그런 변이음이 존재했을 납득할 만한 이유나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9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제안한다. '낫나치 > 난나치 > 낟나치'를 통한 '낯 > 낱'의 변화가 이 어휘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어의 /ㅅ/ 말음을 가진 모든 어휘가 이런 식으로 /ㄷ/으로 재분석된 것이라면? 그리고 그 재분석의 결과만 보았을 때, 음절말 'ㅅ > ㄷ'이라는 역사적 음운 변화가 있었던 것 같은 '환상'이 보이는 것이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옷 닙-' [oznip-] > '온 닙-' [onnip-]이 기저형 '옫 닙-'으로 재분석되어 '옷 없-'과 같은 다른 환경에서도 '옷'이 '옫'으로 발음되게 되었다는 해석이다.

이것은 너무 나간 상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ㅅ > ㄷ'의 변화를 탐구해 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이 논의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결론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자. 'ㅅ' 말음과 ㅅ계 어두 자음군의 발음이 언제부터 변화하였는지에 대한 고광모(2023)의 설은 외국인의 한국어 전사 자료에 나타나는 양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외국 전사 자료와 한글 표기 양상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음절말 환경에서 'ㅅ'이 [ㄷ]으로 발음되기 시작한 시점은 17세기 초로 새롭게 제시하고, ㅅ계 어두 자음군 (혹은 된소리 음소)의 실현은 17세기 후반까지 [C˭ ~ sC]로 자유 변이 속에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비음 앞이 아닌 일반적인 음절말 환경에서의 'ㅅ > ㄷ'의 변화는 비음 앞의 'ㅅ > ㄴ'의 변화가 기저의 'ㅅ > ㄷ'의 변화로 재분석된 후 다른 환경으로 확대된 것일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참고문헌

고광모(2012), 「15세기 국어의 종성 ㅅ에 대하여」, 『국어학』 64.
고광모(2023), 「된소리의 발달」, 『언어학』 95.
김성옥(2018a), 「16∼18세기 한글간찰에서의 음절말 ‘ㅅ’형과 ‘ㄷ’형에 대한 고찰」, 『국어사연구』 26.
김성옥(2018b), 「16∼20세기 한글간찰에서의 기저형 음절말/ㅅ/과 /ㄷ/에 대한 표기 변화 고찰」, 『어문연구』 95.
이동석(2024), 「팔종성법의 실현 양상과 음운론적인 해석」, 『국어사연구』 31.
허인영(2026), 2026년 5월 서강대학교 언어정보연구소 월례발표회 발표자료
Vos (2002), Master Eibokken on Korea and the Korean Language: Supplementary Remarks to Hamel's Narrative.
Wolfram (2004), American English.


각주

  1. 이동석(2024)와 같이 동의하지 않는 일부 학자도 있으나 고광모(2012)에서 대체로 반박되는 주장이다. 

  2. 어중에 오는 경우는 존재했다. 'ᄒᆞᆯ까'와 같이 'ㄹ' 뒤에서 'ㄱ'이 경음화되는 현상 등이 그것이다. 

  3. 2026년 5월 서강대학교 언어정보연구소 월례발표회 발표자료 인용. 

  4. 두못개는 제주의 지명이다. 

  5. 편의상 /ㄲ, ㄸ, ㅃ/로 음소를 표기하지만, 앞서 언급한 /ㅺ, ㅼ, ㅽ/와 의미가 다르지 않다. 

  6. 김성옥(2018a, 2018b)에서도 유사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언간 자료에서 '옷[衣]', '못[不]', '얻-[得]', '듣-[聽]', '믿-[信]', '받-[受]' 등의 어간의 말음 표기 양상을 조사하였는데, '것', '옷'이 '걷', '옫'으로 나타나는 표기는 16세기에 단 한 건도 없고, '얻-', '듣-', '믿-', '받-'이 '엇-', '듯-', '밋-', '밧-'으로 나타나는 표기는 각각 0건, 1건, 2건, 4건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분석으로, '믿-'이 '밋-'으로 표기된 2건은 문맥상 '및-[及]'의 활용형인 것으로 파악되었고, '듣-'이 '듯-'으로 표기되었다는 1건은 확인할 수가 없었으며, '받-'이 '밧-'으로 표기된 4건 중의 1건은 '밧-[脫衣]'의 활용형, 다른 1건은 해독이 명확하지 않아 파악하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되었다. 오직 '받-'이 '밧-'으로 표기된 2건의 예만 남는데, <순천김씨묘출토언간>의 "ᄒᆞ나 밧쟈 ᄒᆞ니 앗가온 ᄃᆞᆺᄒᆞ고"와 "ᄎᆞ려 밧소"가 그것이다. 이 예들은 어미가 'ㅈ, ㅅ'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예외적인 환경의 것들이다. 

  7. 실제로 <노박집람>과 <번역박통사>에서 '난나치'가 나타난다. 

  8. 이러한 첩어의 재분석은 다른 어휘에서도 나타나는데, 'ᄃᆞᆺᄃᆞ시-' /tʌstʌsi/가 /[s]tʌs-stʌs-i/로 재분석되어 급기야 'ᄯᆞᄯᆞ시'와 같이 표기되기에 이른 것이다. 

  9. 고광모(2023)에서는 <훈민정음 해례>에서 ㅅ 종성을 입성에 포함시킨 것을 어말 /ㅅ/이 [st̚]와 같이 발음되었으리라는 주장의 하나의 근거로 들었지만, '촉급함'을 성대의 진동이 멈추는 시점을 기준으로 해석하면 문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