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론적 관점에서 본 중세 한국어의 시제·상·서법 체계
중세 한국어의 선어말어미 '-ᄂᆞ-', '-더-', '-거-', '-아/어-', '-(으)리-' 등으로 표시되는 시제·상·서법 (TAM) 체계에 대하여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본 글에서는 언어유형론적 관점에서 중세 한국어의 TAM 체계가 가지는 위치를 파악하고자 한다.
고영근(1981)은 '-ᄂᆞ-', '-더-', '-거-, -아/어-', '-(으)리-'를 서법(敍法, mood)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ᄂᆞ-'를 '직설법(直說法)', '-더-'를 '회상법', '-거-'와 '-아/어-'를 '확인법', '-∅-'를 '부정법(不定法)', '-(으)리-'를 '추측법' 등으로 파악했다. 최초로 '-거-'와 '-아/어-'를 동사의 자·타에 따라 대립되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가와사키 케이고(2016:185)에서는 '-더-', '-거-', '-아/어-'를 서법이 아닌 시상(tense와 aspect)를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했다. 즉 '-더-'는 과거 비완망상 (past imperfective), '-∅-'를 '과거 완망상 (past perfective)', '-거-, -아/어-'를 완료상(perfect)으로 보았다. 또 과거와 관련된 형식이 이와 같이 '비완망-완망-완료'로 대립하는 언어로 고전 희랍어의 '미완료 과거-아오리스트(부정과거)-현재완료'와 스페인어의 '선과거-점과거-현재완료'를 예시로 들었다.
중세 한국어 선어말어미의 계열 관계
중세 한국어에서 '-ᄂᆞ-', '-더-', '-거-, -아/어-'는 계열 관계(paradigmatic relationship)에 있다. 즉, '-ᄂᆞ-', '-더-', '-거-, -아/어-'는 '*ᄒᆞ더ᄂᆞ다', '*ᄒᆞ거ᄂᆞ니라'와 같이 서로 공기할 수 없다. 또, 선어말어미 '-니-', '-리-' 또한 '*-리니-'와 같이 공기할 수 없으므로 계열 관계에 있다. 이것은 '-니-', '-리-'에 기원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어미 '-ㄴ', '-ㄹ'이 계열 관계를 가지는 것에서 기인할 것이다.
반면에 '-ᄂᆞ-, -더-, -거-, -아/어-'와 '-니-, -리-' 끼리는 부분적인 통합 관계(syntagmatic relationship)을 가진다. 즉 '-리러-' (-리-더-), '-려-' (-리-어-), '-ᄂᆞ니-', '-거니-' 등과 같이 두 계열 간에 통합하는 것이 일부 가능하다.
나는 앞의 '-ᄂᆞ-', '-더-', '-거-, -아/어-'를 시제와 상을 표시하는 선어말어미, '-니-', '-리-'를 서법(mood)를 표시하는 선어말어미로 보고자 한다. 중세 한국어의 '-리-'는 추측, 미래, 의지, 의도, 능력 등을 두루 나타내므로, 비현실 서법(irrealis mood)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로 볼 수 있다. 대립하는 '-니-'는 현실 서법(realis mood)를 나타내는 어미가 된다.
따라서 중세 한국어 용언 활용에서 시제·상·서법은 시제와 상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ᄂᆞ-', '-더-', '-거-, -아/어-'}와 서법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니-', '-리-'} (관형절에서는 {'-ㄴ', '-ㄹ'})가 통합하여 나타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중세 한국어의 시상 체계 분석
Bybee and Dahl(1989)에서 완망상을 가진 언어의 전형적인 시상 체계는 아래와 같다고 하였다.
| 완망상(perfective) | 비완망상(imperfective) | |
| 현재(present) | 과거(past) | |
즉, 비완망상 내에서만 시제(현재와 과거)의 구분이 있는 체계이다. Bybee et al.(1994:95)에서는 유형론적으로 완망상과 단순 과거 시제(simple past)의 차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완망상은 무표지가 아닌 비완망상과 대립하는 반면, 과거 시제는 비완망상과 공기하여 과거 비완망상을 만들거나, 홀로 쓰여 비완망·완망 과거를 모두 표시한다.
- 완망상은 무표지일 수 있으나, 과거 시제는 항상 유표적이다.
- 완망상은 상태동사(stative verb)와 함께 쓰이지 않거나, 함께 쓰였을 때 현재 상태를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반면, 과거 시제는 (상태동사와 쓰였을 때) 과거 상태를 나타낸다.
- 완망상은 미래를 표시하거나 미래 시제와 함께 쓰일 수도 있지만, 과거 시제는 그럴 수 없다.1
위의 표와 나열한 특징들을 보았을 때, "완망상 (무표지), 과거 비완망상 (-더-), 현재 비완망상 (-ᄂᆞ-)"로 대입해서 보면 중세 한국어의 시상 체계의 특징과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을 알 수 있다.
- 중세 한국어의 완망상(-∅-)은 유표적인 비완망상('-더-'와 '-ᄂᆞ-')와 대립한다.
- 중세 한국어의 완망상은 무표지(-∅-)이다.
- 중세 한국어의 완망상(-∅-)이 상태동사(즉, 형용사)와 함께 쓰였을 때, 현재 상태를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예: "노ᄑᆞᆫ(높-∅-ㄴ) 뫼") - 중세 한국어의 완망상은 미래를 표시할 수 있다.
(예: 됴ᄒᆞᆫ 藥ᄋᆞᆯ 몯 어들ᄊᆡ 命이 아니 오라시리ᅌᅵ다(오라-시-리-∅-ᅌᅵ다) [석보상절11:18b])
따라서 중세 한국어의 시상 체계는 크게 완망상과 비완망상이 대립하고, 비완망상 안에서 현재(-ᄂᆞ-)와 과거(-더-)가 세분화되는 체계로 볼 수 있다.
Bybee et al.(1994)에서 사용한 언어 표본에서 중세 한국어와 같이 완망상이 무표지, 비완망상이 유표지로 나타내어지는 언어는 Maung, Worora, Nakanai, Abkhaz, Tem, Ngambai, Tojolabal 총 7종이다. 그 중에서 Nakanai, Ngambai, Tem어에서는 무표지의 동사 형태가 동작동사(dynamic verb)의 경우 완망상을 나타내고, 상태동사의 경우 맥락에 따라 결정되는데 기본적으로 현재를 나타낸다.
그런데 중세 한국어에서는 '-∅-, -더-, -ᄂᆞ-'와 계열 관계를 이루는 '-거-, -아/어-'가 남는다. 이들은 가와사키 케이고(2016)를 따라 '완료(perfect)'로 볼 수도 있고, 또는 '선행시제(anterior)'로 볼 수도 있고, 혹은 '결과상(resultative)'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세 한국어의 선어말어미로 표현되는 시상 체계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완망상(PFV) | 비완망상(IPFV) | 완료(PF) | |
| 현재 | 과거 | ||
| -∅- | -ᄂᆞ- | -더- | -거-, -아/어- |
중세 한국어 시상 체계의 발달 과정
중세 이전의 한국어의 시상 체계에 관해서는 자료가 부족해서 확실히 알기 쉽지 않지만, 중세 한국어의 내적 증거와 석독구결 자료, 그리고 언어유형론적 지식을 활용하여 어떻게 해서 이러한 체계에 도달하게 되었을지 최대한 추측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더-'의 기원에 대해서는 추측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ᄂᆞ-'의 기원에 관해서는 잠정적인 논의들이 조금 존재한다.
우선 배열 순서를 보면, 중세 한국어에서 '-더-', '-거-', '-아/어-', '-ᄂᆞ-', '-으시-'의 상대적인 배열 순서는 아래와 같다.2
{-더-, -거-, -아/어-} + -으시- + -ᄂᆞ-
즉, '-더-', '-거-', '-아/어-'는 '-으시-' 이전에 오고, '-ᄂᆞ-'는 '-으시-' 다음에 온다. 예전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었지만, '-으시-'와 '-ᄂᆞ-'는 비교적 나중에 용언 어간에서 문법화를 겪은 어미일 가능성이 있다. 둘 다 단음절 평/거 교체 어간을 거성으로 실현시키는 강어미인 데다, '-으시-'는 매개모음 '으'가 다른 어미의 매개모음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며, '-ᄂᆞ-'는 'ㄴ, ㄹ, ㅁ, ㆁ'으로 시작하는 어미 중 유일하게 매개모음을 취하지 않는 어미인 것이다. 만약 '-으시-'가 용언 어간에서 문법화되었다면, 그 뒤에 붙는 '-ᄂᆞ-'는 '-으시-'보다도 더 늦게 어미화를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3
석독구결에서는 중세한국어 '-ᄂᆞ-'에 대응되는 선어말어미가 '臥'자의 약체자로 추정되는 구결자 '' (*-누-)로 표기된다.4 박진호(2016:146)에서는 차자가 암시하는 것처럼 동사 어간 '누ᇦ-[臥]'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을 제기하였고, 허인영(2019:73)에서는 여러 언어에서 '서다, 앉다, 눕다'를 의미하는 자세동사가 시제·상·양태 요소로 문법화됨을 지적하였다.
Bybee et al.(1994:128)의 5장에서도 이렇게 자세동사를 포함한 '위치 동사'가 진행상(progressive) 표지로, 그리고 진행상이 비완망상으로 문법화하는 과정에 대해 논하고 있다. 5.2절을 보면 아까 언급했던 Ngambai어에서는 'be seated', 'be standing'을 뜻하는 동사가 포함된 구성이 진행상으로, Dakota어에서는 'stand', 'sit'을 뜻하는 동사가, Jivaro어에서는 'sit'을 뜻하는 동사가 진행상으로 문법화되었고, 또한 'be located', 'be at' 등을 의미하는 구성이 진행상으로 문법화된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5 또한 책의 언어 표본에는 없지만 스페인어의 진행상 구문에 사용되는 estar도 라틴어의 stare 'to stand'에서 온 것을 지적하였다.
이 외에 스웨덴어에서도 우언적 구성으로 병렬 구문 'ligger/står/sitter och VP' ("lies/stands/sits and VP")가 현재 진행상을 표현하는 경우가 잦은데, 문법화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할 만하다.
만약 15세기의 '-ᄂᆞ-'가 동사 어간 '누ᇦ-[臥]'의 선대형에서 문법화를 겪은 것이라면, 다른 언어와 유사하게 '눕다 > 진행상 > 현재 비완망상'으로의 발달 과정을 상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석독구결 자료에서는 현재 비완망상과 관련된 표현이 어떻게 나타날까? 다음과 같이 sktot에서 현대어 번역문이 '(동사) + -는다', '(동사) + -습니다'로 번역된 문장들은 대체로 ' (*-ㅯ다)'라는 어미가 달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 *-ㅯ다
- 諸 如來 供養
모든 如來를 供養한다 [화엄경 권14:17] - 是 如 世 在 深信 令
이와 같이 세간에서 깊이 믿게 한다 [화엄경 권14:19] - 而 {於}彼 衆 師首 作
저 衆生에게 스승이 된다 [화엄경 권14:20] - 菩薩 涅槃 實 如 知
菩薩의 涅槃을 사실대로 안다 [화엄경소 권35:18] - 云何 十方 諸 如來 一切 菩薩 文字 離 不 而 諸 法相 行
어찌 十方의 모든 如來이니 一切 菩薩이니 하는 이가 文字를 여의지 않고 모든 法相에 行하신다 합니까? - 心 厭患 生
마음에서 염환을 낸다 [유가사지론 권20:21] - 敬禮 譬喩 無 深無相義 說
敬禮합니다, 譬喩할 바 없으시어 深無相義를 說하신 것을. [합부금광명경 권3:13]
- 諸 如來 供養
여기에 대해 박진호(1999:165)에서는 다음과 같은 분포적 사실을 지적하였다.
석독구결 자료에서 '-겨다'는 ['-겨ᇝ다'와는 달리] 형용사와 계사와만 결합하고 동사와 결합한 예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겨다'는 '-겨- + -다', '-겨ᇝ다'는 '-겨- + -ㅯ- + -다'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위 문장을 달리 말하면 '-ㅯ-'은 주로 동사와 결합하고 형용사와는 결합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이 사실은 중세 한국어에서의 '-ᄂᆞ-'의 분포와 대략 비슷하다.6 달리 말하면, 중세 한국어의 '-ᄂᆞ-'의 기능을 석독구결의 평서형 종결 구문에서는 '-ㅯ-'이 담당하고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박진호(1999)는 '-겨ᇝ다'가 '당위, 의무' 또는 '가능성, 능력'의 양태적 의미를 나타낸다고 했는데, 석독구결의 '-ㅯ다'의 쓰임에서 그러한 의미를 쉽게 간취할 수 없는 예도 있다. 예를 들어 합부금광명경의 "敬禮" ("敬禮합니다")는 화행(speech act)으로서, '당위, 의무, 가능성, 능력' 중 아무 것도 정확히 해당하는 것이 없어 보인다.
반면에 '' (*-누다)는 오직 2례밖에 없다.
- / *-누다
- 今 {於}我 前 大師子吼
지금 내 앞에서 大師子吼(대사자후)를 하였다 [구역인왕경 권상:11] - 何 {於}此 而 慈忍 生 容
어찌 이들에게 자비와 인내를 베풀 수 있겠는가 한다” 하셨다 [자비도량참법:21]
- 今 {於}我 前 大師子吼
위 구역인왕경 예문의 현대어 번역은 과거형 '하였다'로 되어 있지만, '今 (지금)'이 드러내는 한문의 문맥 상 '대사자후를 하고 있습니다'로 번역해도 무관해 보인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은 추측을 한다.
- 석독구결이 반영하는 언어에서, 평서형 종결 구문 ("~다") 에서는 '*-ㅯ-'이 일반적인 동사의 현재 시제 표지였으며, '*-누-'는 아직 진행상적인 의미를 완전히 탈피하여 현재 시제를 나타내는 표지로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15세기에는 '-ㅯ-'이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등장하게 되고, 머지 않아 소멸하게 된다.
- 모로매 降ᄒᆡ요려 커든 내 알ᄑᆡ셔 주거 뵈요ᇝ다 ᄒᆞ야ᄂᆞᆯ (必欲降 請効死於前) [삼강행실도충신도:6b]
여기서 '주거 뵈요ᇝ다'는 '죽어서 (당신께) 보이겠다'라는 의지·언약을 나타낸다. 즉, 현재라기보단 미래(commissive future)에 해당한다. 석독구결에서 현재를 나타내던 '*-ㅯ-'이라면, 어떻게 이런 발달 과정을 보이게 된 것일까?
여기서 Bybee et al.(1994)의 5.8.1절을 보면, 일부 언어에서 진행상 표지가 현재 시제 표지가 되면서, 옛 현재 시제 표지가 미래 표지로 밀려 나는 현상이 관측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굵은 글씨는 필자 주)
우리의 부호화 절차(coding procedure)를 통해 확인된 현재 습관상(present habitual) 문법소 가운데, 동시에 진행상(progressive)이거나 더 일반적인 현재 시제를 나타내지 않는 것은 단 두 개뿐이었다.
그중 하나는 드라비다어족의 언어인 쿠이어(Kui)에서 나타난다. 쿠이어는 더 오래된 굴절적 현재/과거 표지 체계 위에 덧붙여진 여러 복합 시제(compound tense)를 발달시켰다. 그 결과 현재진행형(Present Progressive)이 사실상 기존의 현재(Present) 영역 일부를 잠식하게 되었고, 옛 현재형은 이제 현재의 습관적 의미와 미래를 나타내는 데 남게 되었다. 이 형태는 현재는 미래형(Future)이라고 불린다.
이 미래형이 본래 더 오래된 현재형이었다는 것은 비교언어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 다른 드라비다어들에서는 이와 동계인 형태들이 여전히 일반적인 현재 시제(general present tense)를 나타내기 때문이다(Subrahmanyam 1971: 313–16).7
만약 '*-ㅯ-'이 정말로 옛 현재 표지였다면, 고대 한국어의 '*-ㅯ-' 역시 새로 등장한 현재 표지 '*-누-' (> -ᄂᆞ-)의 발달로 인하여 위와 유사한 발달 과정을 겪은 게 아닐까 한다.
그런데 '-다' 앞에서 오직 2례밖에 나오지 않던 '*-누-'가 석독구결의 동명사형 환경에서는 아래와 같이 훨씬 더 활발하게 (sktot에서 총 51회) 나타난다.
- / *-눈
- 若 汲井 見
만약 우물물 긷는 것을 보는 경우에는 [화엄경 권14:5] - {此} 一切 法 了知 不()能
이 일체 법을 아는 것을 능히 못하는 이라서 [화엄경소 권35:8] - 摩訶衍 化 行
摩訶衍大乘의 교화를 행하며 하셨는데 [구역인왕경 권상:2] - 已 善 開示
이미 잘 열어 보이고 하는 것이다 [유가사지론 권20:15] - 今日 道場 同 阿鼻大地獄 苦 受 一切 衆生 為 懺悔
今日 道場에 있는 다같이 阿鼻大地獄에서 苦를 받는 一切 衆生을 위하여 懺悔하는 것이니 [자비도량참법:18] - 初地 有相道 行{欲} 是 無明
初地에서 有相道를 行하고자 하는 것도 이는 無明이며 [합부금광명경 권3:7]
- 若 汲井 見
즉, 석독구결이 반영하는 언어에서, 앞서 살펴본 평서형 종결 구문과는 달리, 동명사형 환경에서는 '-누-'가 이미 일반적인 현재 시제의 기능으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ㅯ-'은 오직 '*-다' 앞에서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동명사형 환경에서는 평서형 종결 구문과는 달리 현재 시제를 담당하고 있던 '*-ㅯ-' 같은 표지가 미리 존재하지 않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환경에서 '*-누-'는 일반적인 현재 시제로 더 빨리 발달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여기서 유가사지론의 예 "開示" (*開示ᄒᆞ져 ᄒᆞ눈이다)를 주목하자. 여기서의 "-" (*-ㄴ이다) 어미 구조체는 언어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15세기의 '-니라'로 이어지는 구성일 것이다. 그런데 15세기의 '-니라'와 '-다'의 의미적·분포적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석독구결 시대에서 15세기로 진행하면서, '*-니다'의 의미와 분포는 '-다'의 의미와 점점 근접해져 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언중은 '-니라'와 '-다'를 점차 같은 것으로 취급해 갔을 것이며, '-니라' 앞에 붙는 어미('-누-')가 '-다' 앞에도 같은 의미로 붙을 수 있다는 유추가 가능해졌을 동인이 크다. 이런 과정을 통해 '*-누-' (> -ᄂᆞ-)는 그 분포가 동명사형 (관형사형)에서 '-다' 앞으로 확장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결론
이번 글에서는 중세국어의 시제·상·서법 체계를 유형론적인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 또 중세국어의 선어말어미 '-ᄂᆞ-'의 발달 과정의 한 가능성을 추측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선어말어미 '-ㅯ-'의 옛 기능을 '현재 시제 표지'로 새롭게 제안하고, 15세기 한국어의 '의지'의 의미로 발달한 과정에 대해 언어유형론적 관점에서 한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에서 추정한 중세 이전 한국어의 시상 체계의 변천 과정을 도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형론에 기반한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 엄밀한 논증이나 문증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석독구결 이전 시대>
| 완망상(PFV) | 비완망상(IPFV) | 완료(PF) | 진행상(PROG) | |
| 현재 | 과거 | |||
| -∅- | *-ㅯ-(종결어미) ? (동명사형) | *-더- | *-거-, *-아/어- | *-누- |
<석독구결 시대>
| 완망상(PFV) | 비완망상(IPFV) | 완료(PF) | 진행상(PROG) | |
| 현재 | 과거 | |||
| -∅- | *-ㅯ- () (종결어미) *-누- () (동명사형) | *-더- () | *-거- (), *-아/어- () | *-누- () (평서형 종결 구문에서만) |
<15세기>
| 완망상(PFV) | 비완망상(IPFV) | 완료(PF) | 의지(VOL) | |
| 현재 | 과거 | |||
| -∅- | -ᄂᆞ- (모든 환경) | -더- | -거-, -아/어- | -ㅯ- (소멸 직전) |
참고문헌
박진호(1999), 「고대 국어 문법」, 『국어의 시대별 변천 연구 3: 고대 국어』, 국립국어연구원.
가와사키 케이고(2016), 「중세한국어 감동법 연구 ― ‘깨달음’ 과 ‘복수성’」,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고영근(1981), 『중세국어의 시상과 서법』, 탑출판사.
허인영(2019), 「‘內’ 와 關聯 借字의 通時的 變化」, 『구결연구』 42.
Bybee, Joan L., Östen Dahl. 1989. The creation of tense and aspect systems in the languages of the world. John Benjamins.
Bybee, Joan L., Revere Perkins & William Pagliuca. 1994. The evolution of grammar: Tense, aspect and modality in the languages of the world.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각주
To summarize, then, we find the following differences between perfective and simple past in our data:
(i) Perfective contrasts with non-zero imperfective, while past either co-occurs with imperfective to make a past imperfective or is used alone to signal both perfective and imperfective past.
(ii) Perfective is sometimes zero-marked, but past is not.
(iii) Perfective is either not used with stative verbs or has the effect of signaling a present state with stative verbs. Past signals a past state.
(iv) Perfective is sometimes used for future or with future, but past is not. ↩︎15세기 문헌에도 '-시더-', '-시거-' 등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보통 개신형으로 간주한다. ↩︎
석독구결에서도 '--' (*-시누-)와 '--' (*-시누-)를 찾을 수 있다. ↩︎
'飛'자의 약자로 추정되는 구결자 ''(*ᄂᆞ)도 있는데, 석독구결 자료에서 나타나는 ''의 분포는 ''와는 매우 다르고, 정확한 기능은 알기 어렵지만 시상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느껴진다. 또한 향찰과 이두에서 '內'자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정확한 기능을 특정하기 어렵다. 허인영(2019)에서는 ''의 일부 예를 '항상성' 또는 '바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
후술하겠지만, 이것은 현대 한국어의 '있-'을 포함한 '-고 있-', '-어 있-'이 진행상 표지가 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
중세 한국어에서 '기ᄂᆞ니라'와 같이 형용사와 '-ᄂᆞ-'가 함께 쓰여 기동상(inchoative)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논외로 한다. ↩︎
[…] our coding procedure turned up only two present habitual grams which were not also progressives or more general presents. One of these grams occurs in Kui, a Dravidian language, which has developed some compound tenses which overlay an older, inflectional, present/past marking. The Present Progressive has in effect cut into the Present domain, leaving the old Present to encode present habitual and future, now called Future. That this Future is an older present is supported by comparative evidence: in other Dravidian languages the cognate forms still signal a general present tense (Subrahmanyam 1971: 313—16). ↩︎